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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명현의 명연주] 계촌클래식축제: 풀벌레도 같이 노래하는 마법 같은 공간 조회수 620
작성자 클럽발코니 작성일 2024-06-05 14:00:00






 

 

[허명현의 명연주] 계촌클래식축제: 풀벌레도 같이 노래하는 마법 같은 공간
BALCONY's Column |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

글/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Seungyeol Na, Jaekyung An


  계촌은 마치 시간을 건너뛰어, 어딘가 옛 풍경에 빠져들게 만드는 마법 같은 장소다. 단순한 야외무대가 아니라, 이 공간 하나하나에는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스며드는 비닐하우스는 멋진 공연장으로 재탄생하고, 복지관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대기실 문패가 붙고, 초등학교에는 연주자 대기실 문패가 붙는다. 며칠간 계촌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제 계촌클래식축제도 10주년을 맞이했다. 올해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이진상,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등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한 아티스트들이 축제를 기념했고, 피날레 공연은 지휘자 김선욱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무대로 마무리되었다.



리허설 장면 (허명현 칼럼니스트 제공)


  하이라이트였던 피날레 공연은 지휘자 김선욱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만남만으로도 화제였다. 공연이 시작되기까지 한참 전부터 야외무대에서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야외무대 특성상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리허설이 진행되어 연주자는 부끄러워했지만, 그의 음악은 이미 즐거워 보였다. 여러모로 야외무대의 매력이었다. 특히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하는 음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조성진의 팬들에겐 더 특별한 시간이었을 것 같다. 무대 밖에서 조성진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는 관객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허명현 칼럼니스트 제공


  리허설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주변 공연장에서 공수한 또 다른 피아노 의자도 막 준비를 마쳤다. 아마 저 의자엔 지휘자 김선욱이 피아니스트가 되어 조성진과 함께 뭔가를 연주하겠지?



ⓒSeungyeol Na, Jaekyung An


  공연 시작 전까지 가장 우려되었던 건 갑자기 내리던 비였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비가 와서 계촌마을을 찾은 관객들이 걱정했지만, 공연을 앞두고 갑자기 해가 강렬하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특히 1st 바이올린 섹션은 지휘자를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눈부셔했지만, 분 단위로 변하는 날씨는 순식간에 구름을 불러왔다. 공연 시작을 앞둔 1분 전에 마법처럼 완벽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조성진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주제와 딱 어울리는 분위기로 시작할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1부에서 연주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종종 연주하는 작품 중 하나다. 올해 10월에도 베를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단원들과 같은 작품을 연주한다. 이 작품에선 피아노 못지않게 트럼펫의 역할도 중요한데, 탁 트인 곳에서 멀리 뻗어나가는 트럼펫의 울림이 더 특별했다. 야외 공연장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작품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중협주곡처럼 피아노와 대화를 나누는 트럼펫보다도 트럼펫 그 자체의 질감이 더욱 와닿았다. 조성진의 연주에서도 작품이 담고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복잡한 내면을 듣는 일보다도, 음악적인 쾌감이 먼저 다가왔다. 연주에서는 밝고 흥겨운 모습들이 강조되었다. 지휘자 김선욱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만드는 리듬들도 흥미로웠다. 리허설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정밀하게 조율한 템포의 문제는 여기서 빛을 발했다. 리듬은 결국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은 템포 변화에도 리듬의 모양이 달라진다.



ⓒSeungyeol Na, Jaekyung An


  이어진 앙코르는 더 특별했다. 마침내 준비된 피아노 의자가 무대에 등장하고, 김선욱과 조성진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을 포핸즈로 연주했다. 중간중간 리듬을 당기고 밀고, 여기서도 리듬 게임은 이어졌다. 두 연주자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는 것 같았다. 아티스트 대기실이었던 계촌초등학교에서 걸어 나온 두 사람의 모습도 이 연주에 오버랩되었다. 두 연주자의 즐거움은 관객들에게까지 전염되었고, 음을 잘못 짚고 말고의 문제는 야외무대 위에서 아주 사소했다.



ⓒSeungyeol Na, Jaekyung An


  2부는 김선욱과 경기필만의 시간이었다. 야외공연장 특성상 오케스트라 앙상블이 이루는 치밀한 앙상블을 모두 느껴보긴 어려웠지만, 음악이 연주되는 배경은 새로운 감동을 만들었다. 특히 연주되는 작품이 브람스 교향곡 2번이어서 더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브람스가 교향곡 2번을 작곡할 때, 브람스는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 음표들은 알프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탄생했다. 음악에도 어쩔 수 없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리듬이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이 교향곡을 브람스의 ‘전원 교향곡’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도시의 공연장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계촌마을 같은 공간이 이 음악에 더 어울리는 배경일지도 모르겠다.

  1악장 말미에 호른의 긴 솔로를 지나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그림자가 땅을 덮으며 저녁의 침묵이 시작되는데, 음악은 그 순간과 아주 잘 어울렸다. 풀벌레와 새소리까지 예고 없이 더해져 보통의 공연장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잘 갖추어진 공연장을 벗어난 음악은 불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특별했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공간에서 함께한 특별한 관객들이야말로 축제의 진짜 주인공이었다. 8,000명이 넘는 관객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들었는데, 교통도 불편한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이렇게 큰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모든 게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 공간에서 만들어지던 마법 같은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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