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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명현의 명연주] 라파우 블레하츠 피아노 리사이틀 조회수 236
작성자 클럽발코니 작성일 2024-02-28 18:00:00






 

 

[허명현의 명연주] 라파우 블레하츠 피아노 리사이틀
BALCONY's Column |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

글/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마스트미디어 제공(ⓒHyeonkyu Lee)

 

  라파우 블레하츠는 분명 레퍼토리가 넓은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자기한테 어울리는 레퍼토리는 기가 막히게 잘 찾아온다. 모차르트, 쇼팽, 드뷔시, 시마노프스키 모두 블레하츠랑 잘 맞는 옷이다. 벌써 블레하츠의 피아노 리사이틀도 4번째인데, 쇼팽과 모차르트는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 만큼 블레하츠는 이 두 작곡가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다. 이날 2부에서 가장 넋 놓고 들었던 작품도 모차르트였다. 블레하츠의 모차르트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참 어려운데, 맛있는 반건조(?) 모차르트다. 좋은 의미로 흐물흐물하지 않고, 단단하다. 건조한데 또 맛깔난다. 연주에서 변덕이란 게 있을 수 없고, 잘 짜여진 오페라 스크립트가 존재하는 연주다. 말이 좀 웃기지만 정말 ‘모차르트’ 같다. 개인적으론 에센바흐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정말 좋아해 왔다. 교보재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블레하츠의 연주가 그것과 닮아 있었다. 거기에 늘 잘해왔던 드뷔시도 멋졌고, 마지막으로 연주된 시마노프스키에서는 이 작곡가가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보여줬다. 복잡한 음악 안에서도 깔끔하게 화성이 바뀌고, 드라마틱한 연출까지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마스트미디어 제공(ⓒHyeonkyu Lee)



  이 시대의 쇼팽

  쇼팽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쇼팽의 환생’이라는 홍보문구를 보고 오글거렸는데, 연주를 들으면서는 또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표현의 수위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외모도 비슷하다. 1부 첫 곡은 녹턴으로 시작되었는데 블레하츠는 첫 음과 이어지는 몇 개의 음들에서 이미 다른 차원의 연주를 보여주었다. 음악이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프레이즈를 정리하고 다음 프레이즈를 어떻게 열어야 자연스러운지 이미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쇼팽은 자기 언어처럼 몸에 체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폴로네이즈는 전반적으로 절제되고 단호했다. 그 유명한 폴로네이즈 6번에선 여백을 많이 두지 않고, 쉼 없이 몰아쳤다. 터치도 단단하고 불필요한 연출을 빼버리니, 감상적인 쇼팽에만 머무르지도 않았다. 역시 블레하츠는 언제나 ‘쇼팽이라는 작곡가가 사실은 강인한 작곡가였다’ 라는 걸 설득하려는 연주자다. 또 들을 때마다 언제나 납득이 된다. 실제로 최근 발매된 그의 바르카롤을 들어보면 뱃놀이가 아니라, ‘비켜라, 거북선이 나가신다’ 다.



마스트미디어 제공(ⓒHyeonkyu Lee)



  마주르카가 가장 특별했다. 음악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이건 강하게 정답 같았다. 마침 얼마 전에 케빈 케너의 마주르카 연주가 있었다. 음악의 흐름도 좋고 세련된 연주였다. 자연스럽게 두 연주자의 마주르카가 비교되었다. 케빈 케너가 연주한 마주르카가 백화점에 입점한 고급 음식점이었다면, 블레하츠의 마주르카는 뭐랄까 전통명가라고 해야되나. 출중한 맛이었던 것은 물론이고, 어렴풋이 느꼈던 특유의 억양이 마주르카에서 특히 잘 드러났다. 그게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그렇게 연주되어야만 한다는 설득력이 아주 강했다. 민속적인 색채라고 표현하면 너무 거창하고, 블레하츠에겐 집밥이었다. 정신적 집밥. 내일 쇼팽 콩쿠르에 나가도 마주르카상을 다시 줄 수 밖에 없다.

  앙코르로 연주한 마주르카 op.17-4를 들으면서도 역시 감탄의 연속이었다. 소품처럼만 느껴졌던 이 작품에서 온갖 다양한 종류의 감정이 스쳐갔다. 이 짧은 무곡에 그들만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겼다. 블레하츠보다 쇼팽을 더 재밌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도 당연히 많겠지만, 살아있는 피아니스트 중에 이보다 자연스럽게 쇼팽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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