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제목 [신예슬의 듣는 생활] 나뭇잎 보다는 나무에 가까운 조회수 113
작성자 클럽발코니 작성일 2024-01-31 13:00:00






 

 

[신예슬의 듣는 생활] 나뭇잎 보다는 나무에 가까운
— 2024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 김준형의 ‘Here & Now’
BALCONY's Column |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

글/신예슬 음악 칼럼니스트


 

  올해 금호아트홀의 상주음악가인 피아니스트 김준형의 첫 공연이 열리던 날, 로비에는 짧은 글이 쓰인 나뭇잎 한 장이 있었다. 그가 직접 쓴 짧은 편지였다.



저자 제공



  엽편소설이라는 컨셉에 걸맞게 준비되어 있던 나뭇잎 위 글귀를 차근히 읽다가, 공연의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바흐의 작품 두 곡으로 시작해 베토벤으로, 그리고 브람스로. 공연의 제목은 <Here & Now>, ‘지금 여기’였다.

  아주 고전적인 프로그램이지만 동시에 이 음악들을 ‘엽편소설’의 첫 장으로 내어놓는 일은 꽤 급진적이라고도 생각했다. 우리가 공연에서 듣게 될 것은 김준형의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를 3B의 곡들로 만들어가다니. 누군가 내게 그들의 음악을 거쳐가는 초단편 소설을 원고지 200자 기준, 1매 안에 써내라고 한다면 나는 아무래도 그 과제를 완수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내게 그들은 지금 여기의 음악들을 자라나게 한 땅의 일부였다. 머나먼, 그리고 거대한 이름들이었다.

  그런 생각이 뭉게뭉게 떠오르자, 김준형이 생각하는 길고 짧음이나 크고 작음에 대한 기준, 그리고 그 시야의 넓이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한 시간은 누군가에게 영원과도 같겠지만 누군가에겐 찰나에 불과할 것이고, 누군가에겐 짧은 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기에 딱 적합한 시간일 것이다. 우주에 관한 유튜브를 보며 티끌 같은 현재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무대 공포증이 덜해졌다는 김준형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음악을 그렇게 길고 넓은 시간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걸까? 음악가라는 사람들은 애초에 조금 다른 시간 감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긴 했지만, 그가 떠올리는 시간의 범위는 아주 먼 과거부터 먼 미래까지 활짝 열려있는 것일까 싶었다.



ⓒ Kumho Cultural Foundation



  첫 곡이었던 바흐 ‘건반을 위한 프랑스 모음곡’을 연주할 때는 안정적인 터치가 눈에 띄었다. 바흐 음악의 기쁨과 즐거움은 전면에 드러나기보다는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음형들 속에서 뭉근하게 피어오른다. 너무 무정해서도, 너무 몰입해서도 안 되는 그 곡에서 김준형은 꽤 여유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바흐-부조니의 오르간을 위한 코랄 전주곡 ‘주여, 제가 당신을 간절히 부르나이다’의 연주에서는 조금 더 묵직해진 음악 안에서 달콤한 화성들이 흘러나왔다. 음악 언어가 더 풍요로워진 시대의 편곡인 만큼, 그의 표현의 폭도 그에 상응하며 서서히 넓어졌다.

  베토벤을 어떤 음악가로 이해할 것이냐는 문제는 여전히 내게 흥미롭고도 중요한 문제다. 빠르게 교대되는 음형, 수비토, 때론 괴팍하게 느껴질 정도로 급작스러운 흐름들. 베토벤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음악이 유별나게 변덕스러운 것으로 들리기도, 혹은 깊은 고민의 산물로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김준형의 연주는 후자에 가까웠다. 여전히 깊은 진실을 찾아 헤매는 한 작곡가의 여정에 사려 깊게 발맞추어 가려는 것처럼, 이 음형 다음에 이 음형이 와야만 했던 나름의 이유를 고심하며, 하나하나 공들여 꼼꼼히 연주하는 느낌이었다. 안드라스 쉬프가 ‘미녀와 야수’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상반된 성격이 공존했던 이 곡에서는 특히 음악의 변화에 세심하게 반응하는 그의 입체적인 음색이 돋보였다.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은 단연 피날레를 장식할만했다. 바흐, 바흐-부조니, 베토벤을 거쳐 마침내 도달한 브람스는 김준형의 ‘지금-여기’에 가장 가까워보였다. 하프시코드의 시대에 쓰인 바흐의 음악을 연주할 때와 달리, 여러 액션들이 더해져 다이내믹의 양끝점이 활짝 펼쳐진 피아노포르테의 시대에 쓰인 브람스의 음악에서 그는 음향적, 음색적 팔레트를 풍성하게 펼쳐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저음부에서도 이토록 쨍하는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망치질하는 듯한 소리를 내다가도 금방 구름 낀 날씨와 풍경을 그려내고, 너울처럼 큰 아르페지오와 함께 일렁였다. 느린 악장들을 들으면서는 때론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 반짝이는 것들을 떠올리게 되기도 했다. 어느 순간엔 이 공연의 어떤 순간보다도 ‘말 없는 이야기’를 분명히 듣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흐트러진 기색 없이, 바흐부터 브람스까지 뚜벅뚜벅 걸어와 공연의 끝 무렵으로 향하던 순간 다시 한번 엽편 소설을 떠올렸다. 납득이 가다가도 이 공연에 담겨있던 에너지를 생각하면 이 말은 아무래도 너무 작은 것 같기도 했다. 이게 그에게 엽편 소설이라면 대하 소설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남은 세 번의 공연을 들으면 또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날 공연에서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곳은 나뭇잎이 아니라 어쩌면 반듯하게 커져나가는 나무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Kumho Cultural Foundation



  그의 연주를 처음 들은 날이었고, 연주를 보고 난 뒤 지금의 내겐 이런 질문이 남아 있다. 나무처럼 단단한 곡이 아니라 오늘 세상이 끝날 것처럼 절절히 울어야하는 곡, 온 힘을 다해 음악과 함께 고꾸라져야만 하는 곡, 먹구름 같은 인상만이 남아있는 곡, 질척하고 끈덕하게 늘어지는 나른한 곡, 아주 고약하기 그지없는 곡, 이런 곡들을 그는 어떻게 연주할까. 아마 이 궁금증은 남은 공연들에서 자연스레 해소될 것 같다. 공연은 총 세 번 더 이어질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유키네 쿠로키와 함께할 ‘아름다운 5월에’에서는 슈만과 브람스의 곡, 플루티스트 김유빈, 첼리스트 문태국과 함께할 ‘풍경산책’에서는 드뷔시, 마지막 공연 ‘종을 향하여’에서는 리스트의 음악을 연주할 예정이다. 사뭇 다른 움직임과 정서로 가득할 것 같은 다음의 공연들에서 아마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center

↑크레디아 포스트에는 꿀잼 칼럼이 와르르~
클럽발코니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 _ 2024년 1월 2호) ©clubbalcony.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은 매주 수요일 홈페이지 네이버 포스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