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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윤무진의 플레이리스트] 슈베르트와의 산책 조회수 123
작성자 클럽발코니 작성일 2023-11-29 16:00:00






 

 

[윤무진의 플레이리스트] 슈베르트와의 산책
BALCONY's Column |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

글/윤무진 음악 칼럼니스트


 



  아무리 잘 알려진 명작이라 해도 말이다. 그게 누구에게나 좋을 거라는 생각을 좀처럼 하기 힘든 게 클래식 감상이다. 이 장르는 남 탓이 아닌 내 탓을 하기 쉬운 장르. 그렇기에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왜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거지?’라는 물음에 따라오는 이유도 참 많이 만들 수 있다. 배움이 부족한가? (언제나 그렇다) 이 작품을 들을 만한 준비가 덜 되어 있는가? (항상 그렇다) 아니다, 음반으로 들어서 그렇다. 공연장에 가면 달라질 것이다. (이건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언제나 이유는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 작품과 나의 궁합이 안 맞는 것뿐이다.

  어디 가서 시원하게 말은 못 하지만 내게도 그런 작품이 아주아주 많다. 아무리 여러 번 작품을 들어도, 원고를 쓰기 위해 정확하고 심도 있게 악보를 들여다보며 음악을 감상해도, 도저히 친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 말이다. 조금 전까지 프로그램 노트를 열심히 쓰고 있던 작품도 그렇다. 작곡가 개인을 뛰어넘어 인류가 남긴 걸작으로 칭송받는 그 작품을 지금의 나는 모른다.



프란츠 슈베르트



  작품과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는 고민이 길었던 탓인지 언제부턴가 음악 감상이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과 아주 닮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아주 유명하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은 작품을 보면 나는 학교에서 아주 잘 나갔던, 나와는 스칠 일이 없었던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어쩌다가 이야기를 나누어도 서로 나눌 것이 없는 그런 관계. 그런가 하면 이런 사람도 있다. 평소에는 어디서 무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친구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말을 트게 되면 놀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친구. 몇 마디 대화만으로 기분을 짜릿하게 만들어 주는, 인간으로 태어나 타인과 교감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는 존재 말이다. 운이 좋게도 지난여름의 어느 날, 나는 이런 친구를 실로 오래간만에 사귀게 되었다.

  그날 오후 나는 집 근처 약속 장소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어서 여유롭게 나온 탓이었을까? 약속 시간까지는 넉넉한 상황이 되었기에 별생각 없이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타인을 만나면 에너지를 써야 하기에 너무 과하지 않은, 적당한 작품이면 되겠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 959>의 4악장. 나는 아르카디 볼로도스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들으며 주변을 슬그머니 걸어 나갔다.





  그렇게 10분이 살짝 넘어가는 곡을 들으며 내가 좋아하는 골목을 걸었다. 통유리가 시원해 보이는 카페를 힐끔 쳐다보고, 빵집 진열대에 팔리지 않은 빵이 얼마나 있는지를 빼꼼 살펴보기도 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교자집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모습도 구경했다.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행복해 보였으나 내가 바라보는 풍경을 함께 해주는 슈베르트 덕분에 부러움을 덜어낼 수 있었다.

 애초에 10분이면 족한 산책이었으니 슬슬 약속 장소로 가야지, 하고 몸을 돌렸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음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슈베르트가 함께 걸었던 시간을 다시 정리해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주제에 이어 파편처럼 흩어진 음형들이 짧게 편집되어 연주되고, 또 페이드 아웃 되었다. 음악이 함께 걸었던 모든 순간을 이렇게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슈베르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고는 발랄하게 곡을 끝마쳤다. 아직은 해가 남아 있던 저녁 8시의 여름, 기분 좋은 열기가 불편하지만은 않았던 계절의 어느 날이었다.



ⓒIbrahim Rifath



  ‘그 이후 슈베르트라는 작곡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말은 물론 할 수 없다. 앞으로도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 이후 변한 것이 있다. 진정으로 작품에 닿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이렇게 찾아올 수도 있다고, 그날의 슈베르트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가보고 싶다. 평생 인정이 고팠고, 해낸 것만큼의 평가도 받지 못했던 프란츠 슈베르트의 친구가 된 나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해줄 거다.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너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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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발코니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 _ 2023년 11월 3호) ©clubbalcony.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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