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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구나 아는 쇼팽,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쇼팽 조회수 132
작성자 클럽발코니 작성일 2023-09-13 17:36:41






 

 

[우주대천재의 클래식 노가리]
누구나 아는 쇼팽,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쇼팽
BALCONY's Column |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

글/홍형진 음악 칼럼니스트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음악이 있다. 머잖아 인공지능(AI)에게 잡아먹힐 음악, 적어도 이른 시일 안에는 AI가 모방할 수 없는 음악. 후자의 음악이 궁금하면 미하일 플레트뇨프의 리사이틀을 찾으면 된다.

  많은 클래식 애호가가 이렇게 믿는 듯하다. AI는 절대 인간의 연주를 모방할 수 없다고, 인간만이 가진 무언가는 AI 따위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 널리 알려져서 다양한 녹음이 존재하는 곡을 한결 퀄리티 높게, 그것도 은근슬쩍 개성까지 부여하면서 연주하는 것, 그리고 나름 패턴이나 논리가 있는 곡을 인간의 작업물과 구분하기 힘든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일로 본다. 대규모 투자만 이뤄지면 지금이라도 급진전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기대 수익이 크지 않기에 우선순위가 낮을 뿐.

  하지만 AI가 이른 시일 안에 모방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 전형, 표준, 통념이라고 부르는 영역을 크게 벗어난 무언가, 혹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무언가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것 대부분은 개판이거나 난잡하거나 미숙하게 마련이다. 구태여 흉내 낼 가치가 없기에 구현하려 들지도 않는다. 수요가 없는데 왜 공급하려 들겠나?



©Mat Hannek / DG



  플레트뇨프 연주가 어이없는 건 그래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쇼팽의 그 곡들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몽땅 내 기대를 벗어났다. 각 음의 세기와 길이, 음 사이의 간격, 잔향의 정도 등 모든 것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자의적이라는 표현과 창의적이라는 표현이 팽팽하게 양립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으로 새로운 해석과 구현. 논란은 필연이다. 열광하는 누군가만큼이나 질색하는 누군가도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아주 좋았다. 시건방지게 심판 행세를 하자면 자의보다는 창의에 한 표 던진다. 새로움과 설득력의 완벽한 교점에 있는 연주라고 느꼈고,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기 아까워서 극도로 집중해서 감상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역시나 자기만의 세계를 선보였던) 이보 포고렐리치의 2020년 리사이틀이 떠오른다. 그땐 ‘아이고, 형님. 거기까지 가는 건 좀!’이라며 고개를 저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찍소리 못하고 설득 당했다.

  특히 좋았던 부분들. 1부에서 폴로네이즈 1번, 환상곡, 뱃노래를 연이어 연주했는데 오직 그만의 시선으로 한데 엮어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소나타를 새로 빚은 듯했다. 분명 억지스러운데 나름 그럴싸해서 ‘얘네를 이렇게 엮는다고?’라며 웃었다. 그리고 앙코르로 연주한 글린카의 ‘종달새’와 모슈코프스키 연습곡은 편집증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섬세해서 일종의 극한을 맛볼 수 있었다.



©마스트미디어



  익히 알려졌듯 그는 “지구엔 내 마음에 드는 피아노가 없다”며 연주를 그만뒀다가 시게루 가와이를 만난 다음 무대로 돌아온 바 있다. 이날도 자신의 피아노를 들고 와서 연주했다. ‘포르테’라는 악상 기호를 지워버린 듯한, 그러나 낮은 데시벨과 별개로 음악의 고저는 너무도 드라마틱했던, 때로는 강과 약을 뒤집어버리는 파격마저 서슴지 않았던 그의 독자적인 (그래서 누군가는 학을 뗄 게 틀림없는) 피아니즘은 앙코르에서 특히 빛났다.

  감동 받았나? 그건 모르겠다. 나는 원래 건조한 부류다. 감동보다는 감탄에 가까운 마음으로 즐겼고 내심 신나서 어쩔 줄 몰랐다는 쪽이 정확한 표현이다. 음 하나하나가 내 안의 무언가를 자극하면서 보다 새롭고 신선한, 그래서 살아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살아 있다, 바로 이게 라이브의 진짜 뜻 아니던가?

  누구나 아는 쇼팽,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쇼팽. 쉽게 잊을 수 없는 짜릿한 두 시간이었다. 땡큐, 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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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아 포스트에는 꿀잼 칼럼이 와르르~
클럽발코니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 _ 2023년 9월 2호) ©clubbalcony.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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