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Story] 마이클 부블레_클럽발코니 독점 인터뷰 - 유행을 타지 않고, 믿을 수 있고, 클래식한 음악
조회수
217
작성자
클럽발코니
작성일
2021-10-21 11:43:19
[ARTIST Story] 마이클 부블레_클럽발코니 독점 인터뷰 유행을 타지 않고, 믿을 수 있고, 클래식한 음악
Club BALCONY 매거진102호 (2021년 10~12월호) 中
글/황덕호 KBS 클래식FM < jazz 수첩 > 을 진행하고 있으며,
경희대학교에서 재즈 음악사와 대중음악사를 가르치고 있다.
재즈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쓰고 우리글로 옮겼다.
마이클 부블레가 돌아왔다. 코로나 팬데믹의 장벽을 뚫고 9월부터 시작된 그의 투어는 10월에도 계속 진행 중이다.
아울러 내년 초에 열한 번째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2001년 첫 음반을 발표한 이래로 20년 동안 그는 2년에 한 장씩, 매우 진중하게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그의 새로운 음악을 쌓아가고 있다. 외람되지만, 부블레를 포함해 수많은 음악인들을 멈추게 했던 코로나 대유행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달력상의 19세기는 1899년에 끝이 났지만, 실제로는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과 함께 끝이 났다는 한
역사학자의 지적처럼, 코로나가 발발한 2020년에 실질적으로 20세기도 막을 내렸다는 세간의 말은 그래서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모든 게 바뀌었다. 이미 존재했던 디지털
문화는 팬데믹을 통해 우리 삶 곳곳에 더욱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고,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비대면’과 ‘대면’은 마치 ‘온라인’과 ‘오프라인’처럼
공존할 것이다. 심각하게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코로나 대유행 이후 21세기의 세계 질서도 재편될
것이고, 정부의 역할과 기능도 바뀔 것이며,
가장 근본적으로는 우리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란 점이다(지난 수세기처럼 인간은
과연 노동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도
끈질기게 존속하는 것도 있다. 19세기의 클래식
음악이 20세기에 새로운 매체와 대중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했던 것처럼,
20세기의 음악은 수많은 변화 가운데서도 일종의
‘클래식’이 되어 새로운 세대, 새로운 대중들을
여전히 매혹하고 있다. 이 급진적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오래된 매력. 마이클 부블레는 그 점에
있어서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마이클 부블레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1930년대의 스윙 재즈와 1940년대의 소위
트래디셔널 팝을 조화시킨 음악이다. 1950년대
중반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과 함께
로큰롤이 전성기를 맞았다. 유행은 돌고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들 하지만 그 순환은 늘 ‘다른
옷’을 입고 찾아오기에, 빅밴드가 화려하고
우렁찬 반주를 들려주고 그 앞에서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주인공이 노래를 불러 인기 순위
정상을 수시로 점령하던 시대는 1930~40년대가
절정이었다.
그럼에도 이 화려했던 시대의 향수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빙 크로즈비(1903~1977),
프랭크 시나트라(1915~1998), 냇 킹
콜(1919~1965)은 이 음악의 전성기를 만들고
구가했던 인물들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토니
베넷(1926~ ), 조니 마티스(1935~ ), 해리 코닉
주니어(1967~ )와 같은 스타들이 복고적인 스윙/
팝의 인기를 계속 이어갔기 때문이다. 마이클 부블레는 바로 이 계보를 잇는 가수다. 21세기에도
많은 가수들이 등장했지만 앞선 20세기의 선배들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는 오로지 마이클
부블레에게만 가능하다.
20세기 트래디셔널 팝/재즈의 명맥을 이어가는 21세기 가수
이 평가는 객관적인 수치가 증명한다. 부블레가 워너뮤직 산하 리프라이즈 레코드(프랭크
시나트라가 1960년에 설립했다)와 계약을 맺고 실질적으로 국제 무대에 데뷔했던 세 번째 앨범
<마이클 부블레 Michael Bublé>(2003년)는 미국에서만 플래티넘 레코드(100만 장)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200만 장의 판매를 넘겼으며 다음 음반 <때가 왔다(It’s Time)>(2005)는 미국에서 380만
장, 유럽에서 200만 장이 팔려나갔다. <무책임하다고 말하세요(Call me Irresponsible)>(2007) 역시
전 세계적으로 판매 400만 장을 넘어섰으며 <미친 사랑(Crazy Love)>(2009)은 500만 장, 그리고
캐럴 음반 <크리스마스(Christmas)>(2011)는 무려 1200만 장의 기록을 세웠다. 21세기 들어 음반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경이로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부블레의 이후
음반들 역시 전 세계적으로 100~200만 장의 판매를 꾸준히 기록 중이다. 마이클 부블레를 스윙/팝의
대표적 계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마이클 부블레는 1975년 9월 9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버너비에서 태어났다. 재즈와
빙 크로즈비를 즐겨 들었던 할아버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이 노래에 소질을 보였던 그는 18세
때 신인 등용 프로그램에서 수상하면서 가능성을 보여 두 장의 앨범을 캐나다에서 발표했다.
이후 2003년부터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전성기에 접어들었는데 이때 그의 음반을 제작했던 명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는 부블레와 계약을 할 것인가를 놓고 무척 고민했다고 훗날 고백했다.
이유는 이러한 복고적인 스타일이 과연 얼마나 시장성이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음악의 인기는 장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 개인의 능력, 매력이
결정한다는 점이다.
부블레의 음악은 2000년대 가장 특별한 음악적 현상으로 등장하면서 연이어 성공을 거뒀고
90년대 토니 베넷이 증명했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스윙/팝은 여전히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이 특별한 음악적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부블레가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롤렉스사의 협조로 지난여름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Q팬데믹 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현재 영국 투어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는가?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밴쿠버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말해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고 종일 아빠로 지내는 것이 너무
좋았다.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투어 중이었다. 감사하게도
나머지 투어는 올해 9월에 다시 시작된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지만, 팬들과
투어 패밀리들을 만날 생각에 지금은 아주 들떠 있다.
Q당신의 공연을 보면 관객을 즉흥적으로 무대에 초대해 함께 공연을
한다(서울에서는 팬이 당신의 무대에서 춤을 췄다). 그러한 시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오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내 콘서트는 마치 축하 행사이자 파티가 되길 바라며, 여기에는
관객들이 참여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관객들을 무대에 올리고 같이 무대를
만드는 게 정말로 좋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고 항상 즐겁다.
Q1970년대에 태어난 당신의 성장기는 일렉트로닉 댄스, 헤비메탈,
얼터너티브 록 등이 인기 있던 시대였다. 당신은 청소년 시절에 어떤
음악을 즐겼나? 그리고 어떻게 트래디셔널 팝/재즈를 당신의 음악으로
선택했는가?
음악이 날 찾은 것 같다. 모든 종류의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에는 마이클 잭슨의 열성 팬이었고 스티비 원더나
마빈 게이와 같은 R&B를 좋아했다. 바비 대런, 엘비스 프레슬리, 루이
암스트롱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헤비메탈도 아주
좋아했다. 거기다 각별히 친한 사이였던 우리 할아버지가 스탠더드와
재즈는 물론이고 그 밖의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해주셨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엄청났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도 추천해주신 노래들을 즐겨
들었다. 사람이 한 종류의 음악에만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이라면 모든 장르에서 쓰일 수 있다.
옛 명곡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열정
Q토니 베넷 이후 당신은 가장 유명한 트래디셔널 팝/재즈 가수다. 21세기에
당신의 인기는 경이로운 현상이다. 스스로 이 성공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과분한 칭찬에 부끄럽다. 실은 이 음악을 계속 유지하고 젊은 세대에게 소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내 음악을 좋아해주셔서 너무 기쁠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곡을 작곡하고 연주하기도 한다. 내 음악 취향의 스펙트럼은 넓고, 옛 명곡을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하는
열정은 항상 내 마음 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 노래들은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Q10대, 20대의 젊은이가 당신에게 옛 음악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말해주고 싶은가?
매력은 내가 논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씀드렸듯이, 정통 팝/재즈는 경이롭다. 내 노래를 통해
사람들이 내가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Q당신은 롤렉스의 홍보 대사다. 롤렉스 시계와 당신 음악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공통점은 간단하다. 유행을 타지 않고, 믿을 수 있고, 클래식하면서도 멋지기 때문이다.
Q단지 상품 모델이 아니라 한 상품의 ‘증언자’, 홍보 대사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둘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난 신뢰하지 않는 제품에 절대로 내 이름을 빌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Q앨범 <러브(Love)>를 발표하고서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을 텐데 어떤
앨범일지, 언제 발표가 될지 궁금하다.
매번 앨범 녹음을 마치고 자랑스럽다고 했지만, 요즘 작업하고 있는 새로운 곡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새 앨범은 내년 초에 출시될 예정이고, 오래 기다린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로
스튜디오에 들어갔을 때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작업 중에 있지만 새 곡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어떨지 무척 기대된다.
Q당신은 14년 전에 ‘The Best Is Yet To Come’을
불렀다. 당신 음악의 최고는 언제 온다고
생각하나(혹은 이미 최고에 도달했나)?
정상에 올랐다고 느낀 적은 없다. 매일 밤 무대에
설 때마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밤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으로서 또
예술가로서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
길을 가고 싶다.
롤렉스와 음악
롤렉스는 창립자 한스 빌스도르프의 비전과 가치를 지닌 유산의 일환으로,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과의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이들의 활동을 후원하며 예술과 음악 세계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세대의 유수한 아티스트들이 음악 분야의 홍보대사로 롤렉스와 함께하고 있으며, 롤렉스 멘토&프로테제 아트
이니셔티브(Rolex Mentor and Protégé Arts Initiative) 프로그램은 단순한 후원을 넘어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각 분야의 명망 있는 거장들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창조적인 협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예술의 우수성을 증진시키고 세대 간 지식의 전수에 기여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행사, 기관, 오케스트라와
협력하고 있다. 런던, 밀라노, 뉴욕, 파리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 4곳과 클래식 음악을 상징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빈 필하모닉 2곳이 대표적이다. 롤렉스는 완벽함과 탁월함에 대한 브랜드의 열정을 공유하며 예술적 유산의 전승과
전 세계의 문화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왼쪽부터 영화 분야 프로테제 카일 벨과 멘토 스파이크 리, 비주얼 아트 분야 멘토 캐리 메이 윔스와 프로테제 카밀라 로드리게스 트리아나,
창작 분야 프로테제 아구스티나 산 마틴과 멘토 린-마누엘 미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