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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크루엘라, 이제 빌런의 시대라고 말하다 조회수 146
작성자 클럽발코니 작성일 2021-07-22 16:01:54
[Season’s Column] 김태훈의 영화와 음악
- 크루엘라, 이제 빌런의 시대라고 말하다
Club BALCONY 매거진101호 (2021년 7~9월호) 中
글/김태훈 한때 팝 칼럼니스트. 팟캐스트 <클래식 클라우드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을 진행 중이며, 서퍼이자 가끔 커피를 볶고 내리는 바리스타.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는 영화 애호가.



 
여성을 원톱으로 내세운 영화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80년대에는 프랑스 감독 뤽 베송의 역작 <니키타>가 있었고, 최근 어벤져스 시리즈의 스핀오프 <캡틴 마블>도 떠오른다.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의 계보가 이미 존재하니 영화 <크루엘라>를 새로운, 혹은 최초의 어떤 영화라 말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전통적인 남성 서사에 슬쩍 여성 주인공만 끼워 넣은 게으른 영화가 아닌, 현재라는 시대에 대해 골똘히 고민한 꽤 괜찮은 영화라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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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는 빌런이다. 세상을 구원하는 이보다는 혼란과 반란을 일으키는 악당에 가깝다. 토드 필립스의 영화 <조커>의 여성 버전이라고 봐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해가듯, <크루엘라>의 에스텔라는 크루엘라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영화의 메인 스토리로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조커>와 비교해보면 빌런을 다루는 방식,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묘사하는 모습에선 작지 않은 차이가 느껴진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조커>는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에 수여한 남우주연상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와 완성도를 생각해보면 작품상을 수상해도 이견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시상식이 열리기 전,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조커>의 작품상을 예상하지 않았다. 보수적인 아카데미 위원회가 <조커>를 선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가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계를 그대로 담고 있었기에 자칫 <조커>의 메시지는 반사회적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말기, 노동자와 소외 계층의 폭동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시그널을 보내던 시기이기도 했다.
작품상과 감독상에서 버려진 <조커>의 전례를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영화 <크루엘라>는 현실에서 빌려온 것이 분명한 시대의 문제의식을 디즈니적인 판타지로 슬쩍 각색해 영화화한다. 질서를 통제하는 기성세대, 즉 젊은 세대에겐 가장 강력한 빌런으로 비치는 남작 부인의 캐릭터는 마치 동화 <백설 공주>의 마녀를 떠올리게 하고, 버려지거나 부모를 잃은 여주인공의 서사는 <소공녀>나 <성냥팔이 소녀>에서 빌려온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동화의 설정을 가장 현대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며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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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가 아직 에스텔라이던 시절,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취업하는 리버티 백화점은 오늘날의 대기업들을 상징한다. 그곳에서 꽉 막힌 상사와의 갈등을 통해 소위 꼰대들과의 불화를 재치 있게 보여준다. 잠시 남작 부인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 보이지만, 곧 그녀가 리버티 백화점의 상사보다도 더 악랄히 에스텔라를 착취하는 모습을 드러내자 마침내 에스텔라는 크루엘라가 되기로 결심한다. 악에 정의로 맞서는 것이 아닌, 새로운 악당으로서 스스로를 빌런화하는 크루엘라는 바로 그 지점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끌어낸다. 정의란 사회적 질서가 제대로 작동할 때 존재한다. 만약 그 사회가 상식적이지 않은 선택들을 하는 곳이라면 정의는 힘없는 명분에 불과하다. 크루엘라는 자신이 사는 세계를 리버티 백화점과 남작 부인을 통해 해석하고 마침내 빌런이 되길 선택함으로써 허울만 좋은, 무기력한 선인이 되길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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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마치 흑과 백으로 정확히 나뉜 자신의 머리카락 색처럼, 시대에 따라 선과 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자유 속에서 생명력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흑백의 드레스 코드로 강제된 패션쇼에 붉은색 드레스를 선보이고,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에서 영감을 얻으며, 록 음악의 강렬한 무대 위에서 혁명을 노래하는 크루엘라는 그래서 전복적이며 새로운 시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전령이다. 생물학적인 어머니마저도 범죄에 대해선 책임을 물으며, 그럼에도 자신을 키워준 엄마에게 절절한 애정을 고백하는 장면은 그녀의 행위가 단지 영화적 판타지로만 해석되길 원치 않음을 뜻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50년대, 70년대 록과 팝 음악이 귀를 즐겁게
영화 <크루엘라>는 50년대를 시작으로 7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한 록과 팝을 담고 있다. 비틀스부터 롤링 스톤스, 도어스, 레드 제플린, 퀸, 클래시, 좀비스, 낸시 시나트라, 비지스, 블랙 사바스 등의 사운드트랙들은 귀를 즐겁게 한다. 청년 문화가 가장 뜨겁게 타올랐고 가장 전복적인 시대였던 로큰롤 시대, 반전과 히피 문화의 시대, 68혁명의 시대에 쏟아져 나왔던 곡들을 영화의 배경에 등장시켰는데, 음악마저도 하나의 주제에 맞춰져 있다. 마침내 데빌(Devil)이라고 쓰고 드 빌(De Vil)이라고 읽는 그녀의 성이 적힌 자동차가 등장하는 엔딩에 이르게 되면, <크루엘라>가 기존의 질서와 윤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새로운 세대를 축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롤링 스톤스의 ‘Sympathy for the Devil’이 영화 전편의 주제곡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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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지나친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백인 남성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디즈니가 몇 년 전부터 보여주고 있는 변화, 멕시코 소년이 주인공인 <코코>, 폴리네시아인 소녀의 이야기 <모아나>,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등을 떠올려보면 영화 <크루엘라>의 이야기도 결코 우연한 결과물은 아닐 것이다.
이런 복잡한 의미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영화는 충분히 즐겁다. 앞서 설명한 훌륭한 음악들과 40벌이 넘는 크루엘라의 의상만으로도 2시간의 영화 보기가 신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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