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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지난 여름날 정재옥 |

지난 여름날

 

올해 세 번째 클럽발코니 매거진이 여러분을 찾았습니다. 2020년 여름 서울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지용이 표지 모델입니다. 늘 추구하던 밝은 인상으로 회원님들을 만나지 못해 송구스럽지만, 이 또한 우리 시대의 모습이기에 흔적으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옥수수 밭을 휘감았던 황토색 먼지나,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 비행사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사람은 결코 타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과 사연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훗날 다가올 어려움들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유재하를 찾아 듣습니다. 돌이킬 순 없다고 하면서도 아련함과 후회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문득문득 흐뭇함에 젖는 건 왜일까라고 되묻는 ‘지난날’이란 노래입니다.

 

전례 없는 코로나 팬데믹이란 시커먼 터널로 온 세상이 들어섰습니다. 이 열차에 자의로 탑승한 이들은 없습니다. 언제 터널을 벗어날지 아는 이들 또한 없습니다. 다만 종교, 정치, 인종, 빈부, 지역, 성소수자 등 나와 다른 칸에 있었기에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않으려 했던 세상만사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물 아래 잠겼던 빙점 0.917의 얼음 같은 다른 세상은 보지도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그 누구 한 명도 코로나 원인과 나는 관계없다 말하기도 어려울 듯합니다. 반성은 완성의 반이라는 말처럼, 이기적 탐욕에 대한 반성과 변화가 우리 몫이 된다면, 용서 혹은 기회라는 우주의 답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볼 뿐입니다.

 

어제는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첫날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미 전석 매진된 5월 공연이었지만, 연주자와 용단을 내려 6월로 옮겼고 자리 간격을 넓혀서 2회로 나눴던 공연입니다. 슈만의 첫 음이 객석에 울리는 순간, 안도와 기쁨의 손길이 가슴을 툭툭 치는 느낌이었습니다. 연주는 물론 좋았고, 연주자가 손수 쓴 프로그램 노트도 여운을 남깁니다. 

 

은밀히 귀 기울이는 자에게, 온갖 대지의 꿈속에서, 나지막한 음이, 모든 음을 뚫고 울려 나온다’를 앞머리에 붙인 이 곡을 클라라에게 보내며, 로베르트는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그 나지막한 음, 그건 바로 당신.’

 

전쟁 같은 코로나 상황임에도 문득문득 뭉클한 순간을 접하곤 합니다. 관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우리들의 생업인 무대를 지키려는 노력 또한 병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눴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기에 용재 오닐과 손열음은 예술의전당에서, 에스메 콰르텟과 술술클래식은 롯데콘서트홀에서 예정대로 관객 대면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6월 21일, ‘세계 음악의 날’에 멀리 로마에서 이 무지치와 함께 음악을 들려준 조수미의 위로, 코로나 대응 최전선 병원을 찾아가 환자와 의료진을 위해 연주한 용재 오닐의 용기, 그 밖에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만난 모든 연주가들의 소통. 그 결과로 아티스트들이 듣게 된 낮은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 나지막한 음, 그건 바로 관객 여러분들 앞에서 연주하는 순간이 최고의 인생 선물임을 새삼 깨달은 점입니다.

손열음의 연주가 2부로 넘어가 슈만의 <어린이 정경>, 특히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할 때에는, 불과 몇 달 전 우리가 누렸던 일상들이 꿈처럼 몽롱하게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정기적 급여를 받지 못하는 연주자들과 민간 매니지먼트 인력들은 IMF 때보다 심각한 생존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공공예술의 미덕이 크지만, 민간 예술기획의 덕목은 역사가 말해줍니다. 창의성과 다양성, 그리고 의외성이죠. 다른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들에게 질책보다는 작은 격려를 나눠주는 2020년 여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모두 잘 견뎌서 지구로 귀환한 <마션>의 우주인처럼 훗날의 후배들에게 웃으며 회고담을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해 여름은 그래도 따뜻했다고.

 

무엇보다도 회원 여러분과 가정, 모임의 어떤 분도 아프지 않고 이 터널을 통과하기를 기원합니다.

 

 

정재옥

클럽발코니 회장

 

 

슈만의 판타지는 리스트에 헌정한 곡이기에, 

리스트의 곡을 앙코르로 연주하려 합니다. 곡명은 ‘운 소스피로’(un sospiro), 탄식이란 뜻입니다. 

요즘의 상황 같아요. 

오늘 우리 모두 만나기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그사이에 우리가 강해졌기에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위로 받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피아니스트 손열음(2020년 6월 23일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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